이창호의 부득탐승

"이창호의 不得貪勝". 정말 오랫만에 전공 이외의 책을 보았다. 바둑의 천재이자 전설 이창호 선생님의 일생과 그동안의 생각을 이 책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부족한 필력으로 이 책의 훌륭함을 표현하기는 미안할정도로 좋은 책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기까지의 과정이나 적어보려고 한다.

내가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어린시절을 보냈던 마음의 고향 전주는 최고의 프로바둑기사로 평가받는 이창호9단 기사님의 고향이다. 그래서인지 주변에 바둑학원이 꽤 있었고, 어렸을때 잠깐 바둑학원에 다녔던 기억도 있다. 금방 그만두게 되었던건, 어릴적 나는 다부진 체격에 지금과 달리 다혈질이었기 때문에 오랜시간 앉아서 두는 바둑과는 영 맞지 않았던것 같다. 그런데도 지금은 바둑기사 못지않게 앉아서 일해야하는 프로그래머를 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그렇게 바둑과의 첫 만남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다시 바둑을 접하게 된건 아마도 알파고때였다. 이세돌9단님의 알파고에 패배한 이후, AI때문에 바둑은 더이상 볼 일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이후 아버지가 온라인 바둑을 두시는걸 우연히 보게되었고, 카타고와 조금 놀면서 회복했던 바둑실력으로 아버지께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렇게 나의 바둑은 다시 시작되었다.

어릴적 아버지와 줄곧 바둑을 두곤 했는데, 돌 9점이상 놓고둬도 이겼던 기억이 없다. 정말 너무하다 싶을정도로 매번 최선을 다해 두셨다. 어렸을때는 그걸 어린 마음에 견디지 못하고 바둑과 멀어진 이유 중 하나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은 그 때 패배의 기억이 오히려 더 승부욕을 자극했다. 처음에는 넉점을 깔았고, 이후 차츰 석점, 두점. 본업인 프로그래밍에 집중해야기에 바둑은 가끔 쉬는시간에나 유튭보고 고민해보는 정도였지만 꾸준히 늘어가는 실력이 보여서 재밌었다. 다음에는 정선, 그리고 마침내 호선! 이번 2023년도 추석에는 아버지께 3판 2승1패를 기록했다. 아버지를 이겨먹겠다는 후레자식같은(...)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어째선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오래전에 사두고 집에 방치되있던 "이창호의 不得貪勝"이 읽고 싶어 꺼내읽었다.

이 책과는 별개의 이야기지만 바둑이야기가 나온김에 덧붙이자면 '히카루의 바둑' 애니메이션도 정말 추천한다. 이 책의 내용과도 어느정도 통하는 면도 있고, 3화를 보면 아키라가 히카루에게 화를 내는 장면이 정말 인상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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